글램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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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0년대 초 영국에서 유행하던 록 음악의 한 사조.
2. 특징[편집]
외모적으로는 중성적인 패션과 퇴폐적인 분위기, 음악적으로는 5, 60년대 로큰롤과 하드록의 중간 사운드에 신스 팝과 현악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시조는 70년대 영국에서 등장한 티렉스의 Electric Warrior라는 앨범으로 보는것이 중론이고 이후 데이비드 보위와 록시 뮤직이 꽃을 피웠다는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펑크 록, 팝 메탈(특히 LA 메탈)[1]
글램록은 기술적으로는 신스 팝과 아트 록을 융합시켰으며, 음악적으로는 (주로 록시 뮤직과 브라이언 페리의 영향에 의해) 50년대의 방식을 복고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비주얼적인 면은 1970년대 후반 이후의 MTV 세대의 음악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대중음악계에서 공연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도약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록 뮤지컬의 확립에도 기여했다. 음악의 다양한 시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본토였던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으나, 미국에선 성적이 영 시원치는 않았던 탓에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마이너한 장르로 남아 있다. 가장 대중적인 글램록 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데이비드 보위조차도 미국에서 받아들여진 것은 소울 음악을 도입한 Diamond Dogs 앨범 이후였다. 이 앨범도 글램 록의 범주에 속하고 이전부터 '나름' 잘 나가긴 했다. 스위트를 제외한 대다수의 글램 록 밴드들은 미국 공략에 실패했으며, 미국 본토에서 등장한 글램 록 뮤지션 뉴욕 돌스, 루 리드[2] 등의 뮤지션들마저 보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던 70년대 미국 사회에 서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본국인 영국에서도 펑크 록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렸으며, 많은 글램 록 밴드들은 다른 장르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은 강렬하고 영속적이었으며, 비주얼적인 면에 한정하더라도 KISS, 앨리스 쿠퍼 등의 미국 뮤지션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머틀리 크루 등을 필두로하는 글램 메탈의 기반을 제공했다.건즈 앤 로지스와 같이 현재는 하드록이나 헤비메탈로 분류되는 밴드들 중에서도 초기 의상이나 퍼포먼스에서 글램록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며, 현재까지도 영국의 플라시보나 아담 램버트, 마릴린 맨슨 등의 미국 뮤지션들의 모토가 되어주는 중이다.
3. 대표적인 글램 록 아티스트[편집]
- 티렉스
- 게리 글리터I'm the leader of the gang
rape gang[3] - 데이비드 보위[4] - 앞서 서술되어있듯 가장 대중적인 글램 록 가수였으며, 글램 록의 대부라는 호칭이 있을정도였다.
- 록시 뮤직
- 루 리드[5]
- 슬레이드[6]
- 스파크스 [7]
- 조브리아스
- 뉴욕 돌스
- 수지 쿼트로
- 코크니 레벨
- 엘튼 존[8]
- 퀸[9]
- 스위트
- 스웨이드[10]
- 이브
- 로맨틱펀치
- Palaye Roy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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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키백과에서 이 장르들을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글램 메탈이다.[2] 데이빗 보위와의 합작품 Transformer 활동 한정.[3] 그 유명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에서도 노엘 갤러거가 샘플링하였다 영미권 음악계에서는 거의 제명 수준으로 언급을 꺼리는 인물인데, 성 추문도 많았고 1980년대에는 음주 운전으로 세번 체포당했으며 1990년대에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동남아시아를 돌며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수감된 적이 있고 이후에도 대기실에서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인해 체포되었다. 그야말로 강간마. 오죽하면 게리 글리터법이란 법안까지 만들어졌을까. 저 영상에 나온 연주자들은 후에 The Glitter band로 잘 활동했다.게리 글리터 때문에 이미지만 망친 셈.[4] Ziggy Stardust~Diamond Dogs 시기. 절정은 Ziggy Stardust에서 이뤄졌다.[5] 프로듀서를 맡은 데이빗 보위의 손길과 영향을 많이 받은 Transformer 한정.[6] 국내에서는 정발판이 없을만큼 전혀 인기가 없었지만 글램 록의 선두주자라 할 만한 밴드. 항목 참조. [7] 론 메일(키보드), 러셀 메일(보컬) 형제로 구성된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듀오.(영국에서 먼저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글램 록 아티스트였던 적은 70년대 초중반 한정이며, 그 후에는 디스코, 신스 팝으로 전향하여 수어사이드와 함께 '보컬+키보드 구성 듀오'의 원조 격인 밴드가 되었다. 모리세이가 이들의 팬이며, 프란츠 퍼디난드와 합동 앨범을 낸 적도 있다. 레오스 카락스와 합작해 2021년 칸 영화제 개막작 아네트 각본과 음악을 맡았다.[8] 1970년대 초-중반 한정.[9] 데뷔 초에 한 평론가에게 글램 록의 찌꺼기라는 악평을 받았고(...), 당시 외양이나 몇 곡(Killer Queen 등)에 글램 록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긴 있었다. 하지만 훗날 경력도 그렇듯 이 당시 음악 전체를 보면 공통점이라곤 록 음악이란 것 밖에 없을 만큼 딱히 뭐라고 분류하기 힘들다.[10] 보통 브릿팝 밴드로 분류되지만, 글램 록의 부흥을 내세웠다.